가장 먼저 찾아온 블라디미르 오브루체프 1863~1956 러시아산 촛대에 관심을 보인 왕원록
촛대와 돈황문서 물물교환 고고학에는 문외한 지질학자였던 오브루체프
물물교환 오히려 손해 봤다고 생각
영국 학자 마크 오렐 스타인 1862~1943 8개 국어 구사 엘리트 고고학자
돈황문서 3만 점 중 1만 점을 구입 무넛의 3분의 1을 단독 130파운드 약 20만 원에 구입
마음대로 팔면 안되는데 당시 왕원록과 돈황 탐험대가 비난받는 이유
1만 점 모두 살펴보고 구입? 나름의 룰 꺼내주는 문서만 판매
당시 왕원록이 꺼내놓은 돈황문서 오렐 스타인 탐험대가 돈황문서를 반출하는 모습
고문서 1만 점 마차 5대에 싣고 영국으로 어쨌든 가치를 알아봤다. 10여 종의 다양한 문자로 기록된 돈황문서
무려 8개 국어 능력자 유일하게 몰랐던 중국어
지금 문서는 영국 브리티시 박문관 전시 탐험에 성공한 영웅으로 오렐 스타인 탐사대는 기사 작위까지 수여 받는다.
불법 거래 왕원록 도사는 구속 됐나요? 왕원록의 변론 문서 판 돈은 막고굴 수리비와 건축비에 사용
살짝 모라자미나 나쁜 사람은 아닌 거로 이 모든 것이 막고굴을 지키기 위해 한 일
프랑스 동양학자 폴 펠리오 1878~1945 폴 펠리오 프랑스 동양학자 언어천재 무려 13개 국어 능력자
게다가 수준급의 중국어 구사 도보자의 재발견 돈황 연구에 한 획을 그은 폴 펠리오
돈황에서 가장 먼저 한 일 막고굴 내부를 측량
어학 실력 발휘 다양한 언어의 부문을 해석해서 기록 함께 간 사진작가는 사진으로 기록
당시 사진작가가 찍은 막고굴 그렇게 탄생한 것이 1920년대 출판한 최초의 막고굴 도록
학자의 자세 얼마나 꼼꼼히 측량했냐 하면 일련번호 부여 조사하는 석굴마다 번호를 매겼다. 제1굴~제171굴 현재도 사용 중인 펠리오 넘버
펠리오 방문 이후 훼손당한 막고굴 1917년 러시아 혁명 발발
혁명지지파 적군 혁명반대파 백군 적군 혁명지지파의 승리 후 중국으로 도망 온 9백여 명의 백군
6개월 넘게 막고굴을 은신처로 사용 당시 군들이 벽에 낙서를 한다.
훗날 막고굴 복원에 크게 기여한 도록 펠리오의 기여도는 인정
프랑스 인싸 사교성도 남달랐던 펠리오 친화력 갑 필살기 현지인 뺨치는 중국어 실력 왕원록 제끼는 건 일도 아냐 제재 없이 자유롭게 자행된 돈황문서 매매
왕원록은 펠리오를 신뢰했다. 펠리오 막고굴 입성 성공적 3만 점에서 2만 점이 남아있던 상황
그 많은 양을 열흘 만에 검토 분류도 세분화 꼭 가져갈 것 필요 없는 것 있으면 좋은 것
남다른 클라스 하루에 살펴봐야 하는 문서의 양 2천 점
1분에 2개 꼴로 점검 그렇게 선별한 5천점
그래서 돈황문서의 상징이 된다. 프랑스 파리 기메 박물관과 국립도서관에 전시 중
펠리오가 엄선해간 5천 점의 돈황문서 그 중 우리와 관련 있는 유물이 있다.